저는 인제대학교 보건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정치외교학과 행정조교로 근무하다가 같은 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. 국어학을 전공하면서 입시학원에 국어 강사로 재직하는 동안 한글반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. 그 시절에는‘다문화’의 개념이 아니라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한 분들이 한글을 깨치기 위해서 오시는 수업이었습니다. 생각보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나이가 다양하여서 놀랐으며, 해외에서 결혼해서 온 외국인 여성들도 제법 있었습니다. 모두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대단하여서 가르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. 그렇게 해서 저는 한국어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. 한국에 수업에 좀 더 뜻을 두고 있을 즈음 초등 문해 교원 양성과정을 알게 되어 그 과정을 이수하고 수료하였습니다. 초등학교에서 실습 시간에 직접 문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큰 보람을 느꼈었습니다. 그 수업에도 결혼이주민 여성들과 자녀들, 그리고 많은 어르신들이 함께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. 어르신들께서 집안이 어려워 어렸을 적 못다 한 공부를 위해서 오시는 교실은 항상 훈훈하고 열심이었습니다. 모르는 것이 얼마나 창피하고 사는 데 힘이 드는 줄 아냐는 말씀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. 그렇게 시작한 문해 공부에 폭을 넓혀서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공부해서 우리의 한국어를 더욱 폭 넓게, 그리고 잘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점은행제로 학위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. 그리고 실습과 과목이수를 모두 마치고 학위와 자격증을 땄습니다. 학위 과정을 시작한 지 한 학기가 지나기 전에 마산 가톨릭센터의 한울학교에서 한국어 봉사를 시작하였습니다. 저는 초등 1학년 반을 맡아서 수업을 했는데 그곳에는 우리나라 할머니들과 몽골에서 온 아주머니가 계셨습니다. 똑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하다 보니 몽골에서 온 학생의 발음이며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데 차이가 있었습니다. 같이 공부하시는 할머니 학생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수업 시간 내내 화기애애했습니다. 목표가 뚜렷한 그분들에게 3시간 수업은 지루하지 않아 보였습니다. 저 또한 힘이 나는 시간이었습니다. 모르는 것은 어디에서든 불편하고 주눅드는 일이라는 걸 그때 느꼈습니다.
학교와 사회통합프로그램으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수업할 때도 글을 몰라서 생활의 어려움과 답답함을 늘 호소하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힘든 일이란 걸 알았습니다.
외국인이어서 당연히 힘들고 어려운 것을 감안하고 보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당연히 글을 읽고 쓸 수 있다고 생각하고 보는 관점에서는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어디서든 움츠러들고 힘든 시간일 것 같습니다.
제가 지원하게 된 동기는 큰 변화보다는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아이들에게 좀더 힘듦을 덜어 주고 싶어서입니다.
오늘 하나를 익히고 내일 또 한 개를 더 익히면서 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항상 보람된 일이었습니다. 조금이라도 저로 인해서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.
외국인들을 가르칠 때도 자음과 모음부터 시작해서 어느 날 카드를 쓸 수 있는 단계까지 가는 걸 보니 좋았습니다. 우리 학생들에게도 그런 알아가는 시간을 함께하고 싶습니다. 글이 어려워도 숫자가 잘되는 학생이 있고, 반대로 숫자는 힘들어도 글이 좀 더 쉬운 학생이 있습니다.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많이 생각하고 준비하는 수업을 하고 싶습니다.